군웅(軍雄)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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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웅(軍雄)이란 무엇인가

전쟁에서 죽은 혼령도 군웅으로 보는가

무속에서 말하는 군웅(軍雄)은 무엇일까.

군웅을 찾아보면 장수신이라고 설명하는 자료가 많다. 관우나 유비, 장비와 같은 중국계 인물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최영이나 임경업처럼 우리 역사에 실제 존재했던 장군을 함께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실제 무속 현장에서는 군웅을 이보다 넓게 보는 경우가 있다.

전쟁터에서 칼을 맞아 죽은 사람, 총을 맞고 쓰러진 사람, 이름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전란 속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간 혼령까지 군웅으로 받아들이는 무속인들이 있다.

나 역시 그렇게 배웠다.

그렇다면 학술자료에서 설명하는 군웅과 무속 현장에서 말하는 군웅 가운데 어느 것이 맞는 것일까.

나는 어느 하나를 정답으로 정해 놓고 다른 쪽을 틀렸다고 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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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웅을 장수신으로 보는 전승

군웅의 한자를 풀면 軍雄, 군사 군(軍)에 뛰어날 웅(雄)을 쓴다.

무속에서 군웅은 장수신적인 성격과 깊이 연결되어 전해져 왔다.

실존했던 장군이 신격화되어 모셔지는 경우도 있고, 역사적인 이름이 특정되지 않은 장수신이 군웅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지역과 전승에 따른 차이가 나타난다.

어떤 자료에서는 최영장군이나 임경업장군처럼 역사적 인물이 신격화된 장군신과 군웅을 구별한다. 최영장군은 최영장군이고 임경업장군은 임경업장군이며, 군웅은 특정 인물 한 사람을 가리키는 신격이 아니라는 해석이다.

반대로 실제 무속 현장에서는 이런 장군신들을 넓은 군웅의 범주에서 이해하거나 함께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군웅이라는 말 하나만 가지고 전국의 모든 무속인이 똑같은 신격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면 실제 현장과 맞지 않을 수 있다.

전쟁에서 칼이나 총을 맞고 죽은 혼령

내가 신부모와 신선생에게 배우고 실제 무속 현장에서 접해 온 군웅은 이름난 장군들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전쟁에서 칼을 맞고 죽은 혼령도 군웅으로 볼 수 있고, 총을 맞고 죽은 혼령도 군웅으로 볼 수 있다.

전쟁터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는다.

그 가운데 역사책에 이름을 남긴 장군은 극히 일부다.

이름 없는 병사도 있었을 것이고, 어느 편에 섰는지도 기록되지 않은 채 죽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전쟁에 휘말려 산과 들에서 죽음을 맞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무속 현장에서는 이러한 전란의 죽음을 단지 역사 속 숫자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특히 피를 흘리고 비명에 죽은 혼령, 칼과 총에 목숨을 잃은 혼령을 군웅의 성격과 연결하여 받아들이는 전승과 해석이 있다.

그래서 내가 배운 군웅 역시 반드시 갑옷을 입고 수많은 군사를 지휘했던 유명한 장수만을 뜻하지 않는다.

전쟁이라는 참혹한 상황에서 칼과 총에 죽어간 이름 없는 혼령까지 군웅의 범주에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 내가 배운 방식이다.

그렇다면 전쟁에서 죽은 사람은 모두 군웅인가

여기서는 한 가지를 조심해야 한다.

전쟁에서 죽었다는 이유 하나만 가지고 모든 혼령을 무조건 군웅이라고 단정하는 것 역시 내가 말하려는 뜻은 아니다.

어떤 혼령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신명으로 판단하는지는 무속인마다 다를 수 있다.

지역의 전승도 다르고 법맥도 다르다.

신부모에게 무엇을 배웠는지, 신선생에게 어떤 가르침을 받았는지에 따라서도 다를 수 있다.

무엇보다 무속인은 자신이 모시는 신명님의 가르침과 공수를 통해 신의 세계를 배우고 이해해 나간다.

그래서 같은 현상을 놓고도 한 무속인은 군웅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무속인은 다른 성격의 혼령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런 차이를 가지고 누가 맞고 누가 틀렸다고 쉽게 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학계의 군웅과 무속 현장의 군웅

학술적으로 무속을 연구하는 일은 중요하다.

오래된 문헌과 현장조사를 통해 어느 지역에서 어떤 신을 모셨는지, 군웅이라는 신격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지 기록하고 비교하는 작업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도 과거 무속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그 연구는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학술적인 분류와 실제 무속인이 신부모에게 전수받은 가르침이 언제나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이 틀렸다고 볼 필요도 없다.

무속은 오랜 세월 지역과 사람을 따라 전해졌다.

같은 이름의 신명이라도 지역에 따라 모시는 방식이나 해석이 달라질 수 있고, 같은 지역 안에서도 법맥에 따라 차이가 생길 수 있다.

특히 신부모나 신선생에게 배운 군웅에 대한 가르침은 그분이 모시는 신명님의 군웅에 대한 해석과 맞닿아 있을 수도 있다.

나는 이 부분을 존중해야 한다고 본다.

“나는 이렇게 배웠다”

무속공부를 하다 보면 가끔 이런 말을 듣는다.

“군웅은 그것이 아니다.”

“내가 배운 군웅은 다르다.”

그럴 수 있다.

나는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신부모와 신선생에게 배운 것이 있고 다른 제자가 자신의 신부모에게 배운 것이 있다. 서로 다른 법맥에서 이어져 온 가르침이라면 표현이나 해석이 다를 수 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상대방의 것을 틀렸다고 만드는 일이 아니다.

“나는 이렇게 배웠다.”

먼저 그렇게 말하면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어떻게 배웠는지 들어보면 된다.

학술자료에서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도 찾아볼 수 있다.

그렇게 하나씩 비교하다 보면 군웅이라는 신명 하나에도 우리 무속이 얼마나 다양한 경험과 전승을 품고 있는지 보이기 시작한다.

자신의 신명에게 다시 확인하는 공부

내가 무속공부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은 책 한 권이나 누군가의 말 한마디를 가지고 모든 무속을 하나로 재단하는 것이다.

책도 공부해야 한다.

옛 자료도 찾아봐야 한다.

학계에서 조사한 내용도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가르쳐 준 신부모와 신선생의 말씀도 되짚어봐야 한다.

그러고 나서 신제자라면 마지막으로 자신이 모시는 신명님께서 군웅을 어떻게 가르쳐 주시는지 스스로 확인해 보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여기에서 이야기한 군웅 역시 모든 무속인에게 적용되는 유일한 정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배운 군웅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칼이나 총을 맞고 죽은 혼령까지 군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내가 배운 무속의 한 모습이다.

다른 법맥에서 군웅을 다르게 배웠다면 그것도 존중한다.

학계에서 군웅을 다르게 분류한다면 그 연구 역시 존중한다.

서로 다른 기록과 가르침을 살펴보고 자신의 법맥과 자신이 모시는 신명의 가르침 속에서 다시 확인하는 것.

나는 그것이 무속을 제대로 공부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천신장군암 무속자료실

무속 현장에서 실제 사용되어 온 말과 무구, 신명과 의식, 지역마다 다르게 전해진 무속문화를 하나씩 기록하고 공부합니다.

글쓴이 계룡산 벼락신장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