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에서 말하는 음과 양, 홀수와 짝수에는 어떤 뜻이 있는가
🕯️ 신당 촛불 켜기
하루 몇 번이든 마음을 담아 기도하세요 🙏
오늘의 기도 횟수: 0회
무속에서 말하는 음과 양, 홀수와 짝수에는 어떤 뜻이 있는가

글쓴이 계룡산 벼락신장법사
음양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루는 것이다
무속을 공부하다 보면 음(陰)과 양(陽)이라는 말을 참 많이 듣는다.
낮과 밤, 해와 달, 남자와 여자, 산 사람과 죽은 사람, 왼쪽과 오른쪽, 홀수와 짝수까지 많은 것을 음과 양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그러다 보니 음은 어둡고 나쁜 것이며 양은 밝고 좋은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내가 신부모와 신선생에게 배우고 오랫동안 무속 현장에서 경험한 음양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음이 있다고 해서 나쁜 것이 아니고 양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다.
음과 양은 서로 반대편에 있으면서도 어느 하나만으로는 온전할 수 없는 관계다. 낮이 있으면 밤이 있고, 해가 뜨면 지며,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다.
내가 배운 무속의 음양 가운데 중요한 말이 있다.
“양으로 음을 위한다.”
나는 이 말을 단순히 양으로 음을 누르고 제압한다는 의미로 배우지 않았다.
살아 있는 사람이 정성을 다하여 돌아가신 조상을 모시고, 혼령을 달래고, 신명님께 정성을 올리는 것도 넓게 보면 양의 세계에서 음의 세계를 위하는 일이다.
때로는 삿된 음기를 막거나 물리치는 양의 작용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속에서 음과 양의 관계를 언제나 대립과 제압으로만 볼 수는 없다.
위하고, 달래고, 풀어 주고, 보내 드리고,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 역시 내가 배운 음양의 중요한 이치다.
홀수는 양이고 짝수는 음인가
전통적인 음양수(陰陽數)의 관념에서는 홀수와 짝수도 음양으로 구분한다.
1·3·5·7·9와 같은 홀수는 양수(陽數)에 속하고, 2·4·6·8·10과 같은 짝수는 음수(陰數)에 속한다고 본다.
이러한 숫자에 대한 관념은 우리의 세시풍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월 1일, 3월 3일 삼짇날, 5월 5일 단오, 7월 7일 칠석, 9월 9일 중양절처럼 홀수가 겹치는 날을 중요하게 여긴 전통이 있다. 특히 9월 9일은 양수가 거듭된다는 의미에서 중양(重陽)이라고 불렀다.
무속에서도 3, 5, 7과 같은 홀수를 사용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내가 배운 무속에서는 이러한 양수를 사용할 때도 앞서 말한 “양으로 음을 위한다”는 생각과 연결해서 이해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무속이나 제례에서 사용하는 모든 숫자가 반드시 홀수여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제물은 반드시 홀수로 올려야 하는가
이 부분은 특히 조심해서 설명해야 한다.
흔히 제사나 무속에서는 과일과 제물을 반드시 3개, 5개, 7개와 같이 홀수로 올려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전통 제례자료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제례의 상차림에는 제물의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른 수가 사용된 기록이 있으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제사상 역시 하나의 절대적인 방식으로만 전승된 것은 아니다.
지역과 집안의 가풍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고, 시대가 흐르면서 진설 방식이 달라진 경우도 있다.
무속은 그 차이가 더욱 크다.
지역에 따라 굿상에 올라가는 제물이 다르고, 같은 종류의 제물이라 하더라도 만드는 방법과 올리는 방법, 의례가 끝난 뒤 처리하는 방법까지 다를 수 있다.
실제로 학술연구에서도 서해안풍어제, 동해안별신굿, 남해안별신굿, 제주 잠수굿 등에 사용되는 떡의 형태와 사용법, 의례가 끝난 뒤의 처리 방식이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따라서 어느 한 지역이나 한 집안, 한 법맥의 방식을 가지고 “우리 무속에서는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내가 신부모와 신선생에게 배운 방법이 있고, 다른 신제자는 또 다른 방법을 배웠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전승을 틀렸다고 하기 전에 왜 그렇게 전해졌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3과 5는 왜 자주 등장하는가
홀수 가운데에서도 3과 5는 우리 전통문화에서 유난히 자주 등장한다.
3은 천(天)·지(地)·인(人), 즉 하늘과 땅과 사람이라는 삼재(三才)의 구조와 연결하여 설명되기도 한다.
5 역시 동양의 오행인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를 떠올리게 하는 숫자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조심해야 한다.
무속에서 어떤 제물을 세 개 올렸다고 해서 그것이 언제나 천지인을 의미하고, 다섯 개를 사용했다고 해서 반드시 오행을 의미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실제 의례에서 사용하는 숫자의 의미는 지역과 법맥, 의례의 성격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숫자에 의미가 있다고 해서 모든 행위의 이유를 숫자 하나로 거꾸로 끼워 맞춰서는 안 된다.
자시는 왜 중요한가
무속에서 시간의 음양도 중요하다.
그중 내가 중요하게 배운 시간이 자시(子時)다.
자시는 전통적인 십이시진(十二時辰) 가운데 하나로 오늘날의 시간으로는 대략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를 말한다.
전통 제례에서도 이 시간은 중요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제사 자료를 보면 과거에는 기제사를 해시(亥時) 말에서 자시 초, 오늘날 시간으로 대략 밤 11시 30분에서 자정 사이에 지내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돌아가신 날의 첫 시각에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문헌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제례의 설명이다.
그러나 내가 신부모와 신선생에게 배운 무속의 자시는 조금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는 자시를 천문(天門)이 열리는 시간, 개천(開天)의 시간으로 배웠다.
하늘의 문이 열리고 혼령들이 움직이며 신명님들이 하강하시기에 좋은 시간이라고 배웠다.
그래서 내가 배운 무속에서는 자시를 기도와 정성을 올리는 중요한 시간으로 여겼다.
이것은 학술자료에서 확인되는 제사의 시간에 대한 설명과 구분하여 기록해 둘 필요가 있다. 나는 무속에 입문하여 신부모와 신선생에게 그렇게 배웠고 실제 현장에서도 자시를 중요하게 여겨 왔다.
문헌에 기록된 제례의 자시와 무속인이 법맥을 통해 전승받은 자시에 대한 설명이 반드시 똑같을 필요는 없다.
바로 이러한 차이를 함께 기록하는 것이 살아 있는 무속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좌양우음, 그런데 누구의 왼쪽인가
음양을 공부하면 좌양우음(左陽右陰)이라는 말을 접하게 된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왼쪽은 양이고 오른쪽은 음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실제 제례나 무속에 이것을 적용하려면 반드시 먼저 따져야 할 것이 있다.
“도대체 누구의 왼쪽이고 누구의 오른쪽인가?”
제상을 차려 놓고 자손이 바라보는 왼쪽과 신위에 모셔진 조상님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왼쪽은 서로 반대가 된다.
전통 제례자료에서도 진설할 때에는 신위를 중심으로 좌우 방위를 설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제상을 바라보는 자손의 눈으로만 좌우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전통적으로 신위가 남쪽을 바라보고 자손이 북쪽을 바라보는 배치를 전제로 설명한다면, 신위의 왼쪽과 자손이 바라보는 왼쪽은 반대가 된다.
이 기준을 모르고 좌양우음을 설명하면 동쪽과 서쪽까지 뒤바뀔 수 있다.
그래서 제례든 무속이든 좌우와 방위를 이야기할 때에는 먼저 사람을 기준으로 하는 것인지, 신위를 기준으로 하는 것인지부터 밝혀야 한다.
그렇다면 무당은 왜 돌면서 춤을 추는가
굿판에서 무당이 신이 올라 춤을 추면서 몸을 돌고 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왜 왼쪽으로 도는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좌양우음이라는 음양론만 놓고 보면 왼쪽과 양의 관계를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 무당이 왼쪽으로 도는 이유를 “양기를 일으키기 위해서”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현재 확인되는 무속 연구를 살펴보면 굿의 춤과 음악, 절차는 지역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굿의 음악 담당자와 진행 방식 자체도 지역 전승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각 지역의 무속 의례가 하나의 방식으로 통일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회전 방향 역시 어느 지역의 어떤 굿인지, 어떤 거리인지, 어느 법맥의 무당인지, 그리고 무당 자신의 방향을 기준으로 말하는 것인지 신단의 방향을 기준으로 하는 것인지까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 부분은 앞으로 지역별 굿의 춤사위와 의례 절차를 더 조사하여 별도의 자료로 기록할 필요가 있다.
확실하지 않은 것을 음양론에 맞춰 억지로 설명하는 것보다 모르는 부분은 남겨 두고 자료를 더 찾는 것이 옳다고 본다.
무속의 음과 양은 생활 속에서 움직인다
책에서 음양을 공부하면 음과 양이 마치 표처럼 깔끔하게 나누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무속 현장에 들어오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시간에도 음양이 있고, 방위에도 음양이 있으며, 숫자와 색, 사람과 혼령을 바라보는 데에도 음양의 관념이 스며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음과 양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신부모와 신선생에게 “양으로 음을 위한다”고 배웠다.
산 사람이 돌아가신 조상에게 정성을 올리는 것도 그러하고, 혼령을 달래고 좋은 곳으로 보내 드리고자 하는 것도 그러하다.
때로는 강한 양의 기운으로 삿된 것을 막기도 하지만 그것이 무속에서 말하는 음양의 전부는 아니다.
음이 있기에 양이 있고 양이 있기에 음이 있다.
그래서 무속의 음양을 공부할 때에는 “어느 쪽이 더 좋은가”를 따지는 것보다 그 둘이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나는 배웠다.
문헌의 무속과 현장의 무속을 함께 기록해야 하는 이유
무속은 책으로만 전해진 문화가 아니다.
지역에서 지역으로, 신부모에서 신제자로, 신선생에서 제자로 말과 행동을 통해 이어져 왔다.
그러다 보니 문헌에 기록된 설명과 실제 무속 현장에서 사용하는 설명이 서로 다를 때가 있다.
그럴 때 어느 한쪽을 무조건 틀렸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문헌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문헌자료라고 밝히고, 내가 신부모와 신선생에게 배운 것은 “나는 이렇게 배웠다”고 기록하면 된다.
다른 지역에서 다르게 전승되었다면 그 차이 역시 기록해야 한다.
그렇게 하나씩 모아 놓아야 후대의 신제자들도 우리 무속이 어떤 모습으로 전해져 왔는지를 비교하고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다.
천신장군암 무속자료실
우리 무속은 오랜 세월 지역과 법맥에 따라 서로 다른 용어와 의식, 비방과 행위로 전해져 왔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는 지역 간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과거 특정 지역에서 사용하던 무속용어나 의식이 다른 지역에서도 함께 사용되는 등 여러 전승이 공존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또한 무속은 문헌으로만 전해진 것이 아니라 신부모와 신선생을 통해 구전과 실제 행위로 이어져 왔기에, 누구에게 어떻게 배웠는가에 따라서도 용어의 뜻과 의식의 방법에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신제자가 행하는 비방과 의식은 자신이 모시는 신명님과 법맥에 따라 서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한 지역이나 한 사람의 방식만을 무속 전체의 절대적인 정답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틀림이라기보다 각 지역의 전승과 법맥, 그리고 제자마다 지닌 무속의 특징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천신장군암 무속자료실은 이러한 차이를 존중합니다. 문헌과 민속자료에 기록된 내용, 지역별 전승, 신부모·신선생을 통해 이어진 가르침, 실제 무속 현장의 경험을 가능한 한 구분하여 기록하고 서로 비교해 보고자 합니다.
이곳의 글은 하나의 정답을 정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서로 다르게 전해져 온 우리 무속을 함께 공부하고 기록하기 위한 자료입니다.
글쓴이 계룡산 벼락신장법사
※ 본 연재물의 무단 전재·복사·배포를 금합니다.
© 점잘보는집.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