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은 왜 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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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한 장에도 신을 모시는 자리와 잡귀를 막는 법이 있다
지난 글에서는 충청도 앉은굿과 법사의 독경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번에는 그 앉은굿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설경(設經)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설경을 처음 보는 분들은 이렇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종이를 저렇게 많이 오려서 왜 매달아 놓았을까?”
“굿청을 예쁘게 꾸미려고 하는 것인가?”
그런데 설경은 단순한 장식이 아닙니다.
법사가 굿청에 설경을 친다는 것은 신령을 모실 자리를 정하고, 신장을 세우고, 잡귀와 잡신이 함부로 넘나들지 못하도록 굿청의 경계를 세우는 일이라고 이해하는 편이 좋습니다.
말로 읽는 경문이 있다면, 그 경문의 내용을 눈앞에 펼쳐놓은 것이 설경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충청지역 앉은굿 연구에서도 설위와 설경을 독경의 내용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낸 종이무구로 설명합니다.
설위와 설경은 같은 말인가
여기서 먼저 용어부터 짚어야 합니다.
지역에 따라 설위(設位), 설경(設經), 설위설경, 서류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충남 서산·태안·홍성·보령 등에서는 이러한 명칭들이 실제로 함께 사용된 것으로 조사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어느 한 명칭만 옳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법맥에 따라 다르고 지역에 따라서도 다릅니다.
저는 이런 부분을 무속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봅니다.
내가 배운 법이 있다고 해서 다른 지역의 법까지 틀렸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충청도 안에서도 다르고, 같은 지역 법사라도 누구에게 배웠느냐에 따라 설경을 치는 방법과 모양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설경에는 무엇이 있을까
설경이라고 하면 커다란 종이 한 장만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굿청에 들어가는 종이무구는 여러 가지입니다.
대표적으로 위목, 신장대, 철망, 팔문금쇄진, 부적, 지화, 고깔 등의 종이무구가 전승되어 왔습니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위목, 신령의 자리를 밝힌다
위목(位目)은 쉽게 말하면 그 자리에 어떤 신령을 모셨는지를 밝히는 것입니다.
설경을 친다고 무조건 잡귀부터 잡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누구를 청배하고 어느 신장을 어느 자리에 세울 것인가가 있어야 합니다.
실제 전승 사례를 보면 제장의 위치와 방위를 살펴 산 쪽에는 산왕신장, 물 쪽에는 용왕신장, 대문 쪽에는 착귀신장을 설치하고 중앙에는 옥황상제를 모시는 방식도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모든 법사가 반드시 똑같이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설경은 법사가 읽는 경과 굿의 목적에 맞아야 합니다.
2. 철망, 잡귀를 잡는 그물
설경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 철망(鐵網)입니다.
진짜 쇠로 만든 철망이라는 뜻이 아니라 종이를 오려 그물처럼 만든 설경입니다.
그 의미는 상당히 분명합니다.
잡귀와 잡신을 걸러내고 잡아 가두는 그물입니다.
고기를 잡으려면 그물을 치듯이 잡귀를 잡는다는 상징을 종이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철망을 단순히 아름다운 종이공예로만 보면 설경의 본래 의미를 놓치게 됩니다.
연구자료에서도 철망은 잡귀나 잡신을 포획하는 무구로 설명됩니다.
3. 팔문금쇄진, 팔방을 막아 진을 친다
조금 더 큰 설경으로 들어가면 팔문금쇄진(八門金鎖陣)이 있습니다.
병경처럼 잡귀를 구축하는 의례에서 경청 천장에 팔방으로 종이 설경을 드리우는 형태가 전승되어 있습니다.
지역이나 법사에 따라 팔방, 또는 구름다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말 그대로 진을 치는 것입니다.
법사는 가운데에서 경을 읽고 신장을 청배합니다.
그리고 사방팔방에는 진이 펼쳐져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잡귀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의미도 있고, 이미 들어온 잡귀가 달아나지 못하도록 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팔문금쇄진을 이해하려면 그냥 ‘종이를 여덟 방향으로 매단다’고 생각해서는 부족합니다.
경청 자체를 하나의 진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훨씬 쉽습니다.
4. 용수철망, 들어온 것을 가두는 장치
전승자료에는 용수철망이라는 것도 나옵니다.
술을 거를 때 사용하는 용수처럼 생긴 종이 철망을 천장에 설치하는 방식입니다.
이 역시 잡귀나 잡신을 감금하는 의미를 갖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설경의 원리가 조금 보입니다.
막고, 잡고, 가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망이나 자물쇠 같은 형상이 설경에 등장하는 것입니다.
5. 자물쇠와 호리병
설경에는 자물쇠 모양도 등장합니다.
왜 하필 자물쇠일까요?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잡아 놓았으면 다시 못 나오게 잠근다는 뜻입니다.
호리병 역시 잡은 귀신을 가두는 의미로 사용된 사례가 전해집니다. 설경 주변에 철망과 쇠줄, 자물쇠를 설치한 전승 사례도 확인됩니다.
옛 법사들이 사용한 설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렇게 형상 하나하나에 이유가 있습니다.
6. 신장대, 신장을 청배하는 자리
설경에는 막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을 모시는 장치도 있습니다.
종이를 가닥 내어 만든 여러 신대를 통해 신령을 강림시키고 의례를 진행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법사가 경을 읽으면서 신장을 청배하는데 정작 신장이 임할 자리가 없다면 안 되겠지요.
그래서 설경에는 신을 모시는 것과 잡귀를 제압하는 것이 함께 존재합니다.
이 두 가지를 같이 봐야 설경이 이해됩니다.
설경은 굿마다 똑같이 치는 것이 아니다
이 부분은 꼭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설경을 많이 치면 무조건 큰 법이고, 적게 치면 작은 법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무슨 일을 하기 위해 경을 읽느냐가 먼저입니다.
안택을 하는 것인지,
병경을 하는 것인지,
잡귀를 구축하려는 것인지,
신령을 청배하는 것인지에 따라 필요한 설경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태안지역 자료에서도 비교적 간단한 안택굿에서는 설위를 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고, 병굿처럼 본격적인 굿에서 설위를 설치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설위에는 홑설위와 겹설위도 있습니다.
겹설위는 이름 그대로 여러 겹으로 장엄하게 설치하기 때문에 시간도 더 들고 손도 많이 갑니다.
그러니 설경은 많이 달아놓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굿의 목적에 맞게 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굿이 끝나면 왜 설경을 태울까
여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굿에 사용한 종이무구 대부분은 의례가 끝나면 소각합니다.
그냥 쓰레기가 되었으니 태우는 것이 아닙니다.
굿을 하는 동안 신장이나 신령을 청배해 사용했던 것이기 때문에 소각 자체가 신을 배송하고 굿청을 다시 일상의 공간으로 돌려놓는 과정으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무조건 태웠던 것도 아닙니다.
예를 들어 성주는 집안에 좌정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안택 뒤에 성주와 관련된 위목이나 신체를 집에 남기는 사례도 조사되어 있습니다.
이 역시 법맥과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종이를 오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설경을 잘 오리는 것도 기술입니다.
한지를 접고 칼과 가위로 신장·꽃·곤충·동물·자물쇠·철망 같은 여러 형상을 만들어 냅니다. 주사를 사용해 신령의 이름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부적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설위설경을 하나의 아름다운 전통 종이공예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실제로 예술적인 가치도 대단합니다.
하지만 무속의 입장에서 보면 예쁘게 오리는 것이 먼저가 아닙니다.
왜 이것을 만들었는지,
어느 신장을 모시는지,
어떤 경을 읽는지,
무엇을 막으려고 하는지,
어디에 설치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모르고 종이만 똑같이 오려 놓는다면 겉모양만 따라 하는 것이 됩니다.
설경은 종이공예이기 전에 법사가 행하는 법의 한 부분입니다.
제가 배운 무속에서는
저는 무속을 공부하면서 늘 같은 말씀을 드립니다.
무속에는 지역이 있고 법맥이 있습니다.
충청도 법사가 하는 방식과 황해도 만신이 하는 방식이 같을 수 없고, 같은 충청도에서도 스승과 법맥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설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책에 나온 설경 하나를 보고
“이것이 정답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틀렸다.”
라고 말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옛 법사들도 자기가 읽는 경과 행하는 법에 맞추어 설경을 쳤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종이의 숫자가 아닙니다.
왜 신장을 세우고, 왜 철망을 치고, 왜 팔방에 진을 놓았는지를 알고 행하는 것.
저는 그것이 설경을 제대로 이해하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설경에 등장하는 신장들은 누구인가.
오방신장과 여러 신장대, 그리고 법사가 경을 읽으며 신장을 어떻게 청배하는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천신장군암 무속자료실
우리 무속은 오랜 세월 지역과 법맥에 따라 서로 다른 용어와 의식, 비방과 행위로 전해져 왔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는 지역 간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과거 특정 지역에서 사용하던 무속용어나 의식이 다른 지역에서도 함께 사용되는 등 여러 전승이 공존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또한 무속은 문헌으로만 전해진 것이 아니라 신부모와 신선생을 통해 구전과 실제 행위로 이어져 왔기에, 누구에게 어떻게 배웠는가에 따라서도 용어의 뜻과 의식의 방법에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신제자가 행하는 비방과 의식은 자신이 모시는 신명님과 법맥에 따라 서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한 지역이나 한 사람의 방식만을 무속 전체의 절대적인 정답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틀림이라기보다 각 지역의 전승과 법맥, 그리고 제자마다 지닌 무속의 특징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천신장군암 무속자료실은 이러한 차이를 존중합니다. 문헌과 민속자료에 기록된 내용, 지역별 전승, 신부모·신선생을 통해 이어진 가르침, 실제 무속 현장의 경험을 가능한 한 구분하여 기록하고 서로 비교해 보고자 합니다.
이곳의 글은 하나의 정답을 정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서로 다르게 전해져 온 우리 무속을 함께 살펴보고 기록하기 위한 자료입니다.
글쓴이 계룡산 벼락신장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