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슬을 세운다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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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슬을 세운다는 것은 무엇인가
-삼지창 위 통돼지와 소머리, 떡시루에 담긴 무속의 의미

굿판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 있다.
무속인이 삼지창이나 월도를 세우고 그 위에 통돼지나 돼지머리, 소머리, 우족 같은 제물을 올린다. 실제 굿 현장에서는 통소나 소갈비를 통째로 세우기도 하고, 떡시루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상당한 무게의 제물을 올린 삼지창이 쓰러지지 않고 서 있는 모습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대개 신기하게 바라본다.
우리 무속에서는 이러한 행위를 흔히 ‘사슬을 세운다’, 또는 ‘사슬세우기’라고 한다.
하지만 사슬세우기는 무거운 제물을 세워 보이는 묘기가 아니다. 굿을 행하는 과정에서 신령이 제가집의 정성을 받았는지 살피고, 신령의 응감과 굿의 길흉을 보고 축원하는 의미를 지닌 무속 의례 가운데 하나다.
사슬은 쇠사슬을 뜻하는가
‘사슬’이라는 말을 들으면 먼저 쇠사슬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민속자료에서는 사슬세우기의 ‘사슬’을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는 쇠사슬과 다르게 설명하기도 한다.
한국민속신앙사전 계열 자료에서는 사슬을 옛말의 산(算), 즉 점이나 셈을 하는 가지와 관련된 말로 풀이하고, 월도나 창 등을 세워 해당 신령이 굿에 응감했는지를 알아보는 행위로 설명한다.
따라서 사슬을 단순히 ‘신과 인간을 쇠사슬처럼 연결한다’는 뜻으로만 풀이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현장에서 그러한 상징적인 의미로 설명하는 전승이 있을 수는 있지만, 용어의 어원과 현장에서 후대로 전해지는 해석은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삼지창과 사슬
삼지창은 한국 무속에서 장군거리나 신장거리 등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무구 가운데 하나다.
문헌자료에서도 삼지창과 언월도는 장군신이나 신장의 위엄을 나타내는 무구로 설명되며, 무속인이 이를 들고 춤을 추거나 사슬을 세우는 데 사용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삼지창에 돼지머리나 소머리를 꽂아 거꾸로 세우고 굿의 효험 여부를 판별하는 행위를 사슬세우기로 기록하고 있다.
서울 진적굿을 조사한 연구에서는 더욱 다양한 형태가 나타난다. 언월도를 제물 없이 세우는 빈 사슬이 있고, 삼지창에 소머리를 올린 사슬과 우족을 올린 사슬도 나타난다. 이러한 사슬은 장군·별상·신장·대감 등 여러 신격에 대한 축원과 응감을 살피는 과정에서 사용된다.
따라서 사슬세우기를 단순히 삼지창에 돼지를 올리는 하나의 방식으로만 이해하기는 어렵다.
사슬에는 무엇을 세우는가
실제 굿판에서 사슬에 사용하는 제물은 다양하다.
통돼지나 돼지머리가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지만 소머리와 우족을 사용하기도 하고, 소갈비를 통째로 올리거나 떡시루를 이용해 사슬을 세우기도 한다.
내가 신기도중 여러 굿판을 보면서 경험한 현장에서는 통소를 이용해 사슬을 세우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공공 민속자료에서도 장군계통 신령과 육류 제물의 관계가 확인된다. 국가유산진흥원이 소개한 황해도굿에서는 고기 제물을 받는 장군계통 신령에게 통돼지를 바치고, 통돼지를 삼지창에 올려 균형을 잡으면서 신령이 정성을 받았는지를 확인하는 사슬세우기를 설명하고 있다.
다만 제물이 다르다고 해서 그 의미를 전국 공통의 공식처럼 나눠서는 안 된다.
통돼지는 반드시 무엇을 뜻하고, 소머리는 무엇을 뜻하며, 떡시루는 무엇을 뜻한다는 식의 하나로 정해진 해석이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굿에서 어느 신명을 모시는가, 어느 지역과 법맥의 전승인가에 따라 사용하는 제물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왜 사슬 밑에 소금을 놓는가
통돼지나 소머리처럼 무거운 제물을 삼지창에 올려놓으면 가장 어려운 것이 무게중심을 잡는 일이다.
그래서 사슬을 세울 때 창이나 칼의 자루 밑을 소금으로 괴는 방식이 현장 전승을 기록한 자료에서 확인된다.
실제 굿판에서도 소금이나 소금자루 등을 아래에 놓고 그 위에서 삼지창의 중심을 잡아 사슬을 세우는 경우가 있다.
무속에서 소금은 부정을 물리거나 정화하는 데 널리 사용되기 때문에 사슬 밑의 소금에도 반드시 그러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여기에는 구분이 필요하다.
사슬세우기에서 소금은 우선 무거운 제물을 올린 삼지창이나 월도의 자루를 괴고 무게중심을 잡는 실제적인 기능이 확인된다. 여기에 별도의 의례적 의미를 함께 부여하는지는 지역과 법맥의 전승에 따라 따로 살펴볼 문제다.
사슬이 잘 서면 무엇을 보는가
사슬세우기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무거운 것을 세웠느냐가 아니라 사슬을 통해 무엇을 보느냐에 있다.
무속 현장에서는 사슬이 잘 서면 신령이 제가집이 올린 정성을 잘 받고 굿에 응감했다고 보는 전승이 널리 나타난다.
응감(應感)이란 신령이 인간이 올린 정성과 축원에 감응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무속인은 사슬을 세우면서 제가집의 정성을 잘 받아달라고 축원하고 자손의 평안과 재수, 복 등을 빈다. 그 과정에서 사슬이 서는 모습을 살피고 신령의 감응과 길흉을 판단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한 번에 서면 대길이고 몇 번 만에 서면 흉하다’는 식으로 하나의 길흉법을 만들어 모든 무속인에게 적용할 수는 없다.
점사를 빼고 신령의 뜻을 받는 방법 자체가 무속인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사슬을 북어로 두드려 넘기는 이유
사슬이 잘 선 것을 확인하고 축원을 마쳤다고 해서 의례가 그대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실제 무속 현장에서는 세워진 사슬을 북어로 두드려 제가집 쪽으로 넘어뜨리고, 제가집이 사슬에 올렸던 제물을 받도록 하는 행위를 볼 수 있다.
나 역시 신부모와 신선생에게 이러한 방식으로 배웠다.
다만 나는 제가집에게 굿을 쉽게 권하는 편이 아니다. 신기도중 여러 굿판을 직접 보고 경험하면서 사슬을 배웠고, 내가 아주 가끔 굿을 행할 때에도 배운 전승에 따라 사슬을 세웠다.
축원을 마치고 사슬을 내릴 때에는 북어로 두드려 제가집 쪽으로 넘기면서 “복 받아가거라” 하고 제물을 받게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사슬을 세우다가 중심을 잃고 저절로 쓰러지는 것과 의례를 마친 무속인이 북어로 두드려 의도적으로 넘기는 것을 구별하는 것이다.
후자는 사슬이 잘못 서서 넘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슬을 세우고 축원을 마친 다음 제가집에게 복을 넘기는 마무리 과정으로 행하는 것이다.
통돼지와 복돈
통돼지 사슬에서는 또 하나 독특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실제 굿 현장에서는 통돼지를 사슬에 올리면서 돼지 등에 돈을 붙이거나 돼지 입에 돈을 물리는 경우가 있다.
내가 신부모와 신선생에게 배운 방식에서도 이렇게 한다.
사슬이 잘 서고 축원을 마치면 북어로 사슬을 두드려 제가집 쪽으로 넘기고 제가집이 통돼지를 받는다.
제가집이 돼지를 받는 것은 굿에 사용한 제물을 단순히 다시 가져가는 것으로만 보지 않는다. 신령 앞에 정성으로 올리고 사슬을 세웠던 돼지를 받아감으로써 ‘복을 받아간다’는 의미로 본다.
반면 돼지 등에 붙이거나 입에 물려놓은 돈은 ‘복돈’이라 하여 무속인이 받는다.
따라서 통돼지와 복돈은 현장에서 의미가 구분된다. 제가집은 돼지를 받아 복을 받아가고, 돼지에 붙이거나 물렸던 복돈은 의식을 행한 무속인이 받는다.
이 역시 모든 무속인이 반드시 똑같이 행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사슬을 내리는 방법이나 복돈을 다루는 방식에는 각자가 배운 전승에 따른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접시에 쌀을 깔고 수저를 세우는 점사
사슬을 반드시 굿판의 커다란 삼지창에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가끔 점사를 보는 무속인 가운데 작은 접시에 쌀을 얇게 깔고 그 위에 수저를 거꾸로 세워 점사를 빼는 사람도 있다.
일반인이 그런 모습을 처음 보면 상당히 신기하게 생각한다.
커다란 삼지창에 통돼지를 올리는 것도 아닌데 작은 접시에 놓인 수저가 거꾸로 서고, 무속인은 그 모습을 살피면서 점사를 받는다.
다만 이 행위를 문헌에서 정의하는 전통적인 사슬세우기와 완전히 동일한 의례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내가 실제 현장에서 보고 배운 관점에서는 물건을 세우고 그 상태를 살피면서 신명의 감응이나 점사를 받는다는 점에서 사슬세우기와 서로 통하는 원리를 가진 행위로 볼 수 있다.
무속인의 점사법은 모두 같지 않다.
어떤 무속인은 대신방울과 대신부채를 들고 점사를 빼고, 어떤 무속인은 신장대를 사용한다. 쌀이나 엽전 등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으며, 접시의 쌀 위에 수저를 세워 점사를 보는 무속인도 있다.
내가 신부모와 신선생에게 배운 무속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차이를 각 무속인이 모시는 신명님과 신력에 따라 점사를 빼는 방법이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것으로 본다.
자신과 다른 방법으로 점사를 본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한쪽을 틀렸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사의 정리
사슬은 일반인의 눈에는 신기한 광경으로 보일 수 있다.
무거운 통돼지나 소머리를 올린 삼지창이 서고, 때로는 통소와 소갈비, 떡시루까지 세워진다. 작은 접시에 쌀을 깔고 수저 하나를 거꾸로 세워 점사를 보는 무속인도 있다.
그러나 무속인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신기한 모습을 보여주느냐가 아니다.
어느 신명 앞에서 무엇을 축원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응감을 받고 어떻게 점사를 빼느냐가 중요하다.
문헌에 남아 있는 사슬세우기의 기록이 있고, 신부모와 신선생을 통해 실제 굿판에서 이어져 온 방법도 있다. 서로 같은 부분도 있고 다른 부분도 있다.
그 차이를 억지로 하나로 맞추기보다 각각의 전승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우리 무속의 실제 모습을 이해하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천신장군암 무속자료실
우리 무속은 오랜 세월 지역과 법맥에 따라 서로 다른 용어와 의식, 비방과 행위로 전해져 왔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는 지역 간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과거 특정 지역에서 사용하던 무속용어나 의식이 다른 지역에서도 함께 사용되는 등 여러 전승이 공존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또한 무속은 문헌으로만 전해진 것이 아니라 신부모와 신선생을 통해 구전과 실제 행위로 이어져 왔기에, 누구에게 어떻게 배웠는가에 따라서도 용어의 뜻과 의식의 방법에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신제자가 행하는 비방과 의식은 자신이 모시는 신명님과 법맥에 따라 서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한 지역이나 한 사람의 방식만을 무속 전체의 절대적인 정답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틀림이라기보다 각 지역의 전승과 법맥, 그리고 제자마다 지닌 무속의 특징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천신장군암 무속자료실은 이러한 차이를 존중합니다. 문헌과 민속자료에 기록된 내용, 지역별 전승, 신부모·신선생을 통해 이어진 가르침, 실제 무속 현장의 경험을 가능한 한 구분하여 기록하고 서로 비교해 보고자 합니다.
이곳의 글은 하나의 정답을 정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서로 다르게 전해져 온 우리 무속을 함께 살펴보고 기록하기 위한 자료입니다.
글쓴이 계룡산 벼락신장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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